아이 방을 새로 꾸미면서 창의력 환경 설계를 공부하다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법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어, 이거 우리 아이 유치원에서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실제로 겹치는 부분이 상당했습니다. 두 교육이 어디서 만나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 저희 아이들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
누리과정과 레지오 철학이 닮은 이유 : 공통점
레지오 에밀리아는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 시에서 시작된 유아교육 철학으로, 창시자 로리스 말라구치(Loris Malaguzzi)가 제안한 개념입니다. 이 교육의 핵심은 아이를 지식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능동적 탐구자로 본다는 점입니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 탐구자'로서 아이 옆에 서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앞서 포스팅한 글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법(유아교육, 창의성, 놀이)"글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 하단에 관련 링크를 첨부하겠습니다.
2026년 현재 시행하고 있는 2019 개정 누리과정 역시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아이가 놀이를 통해 스스로 배움을 구성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입니다. 교육부가 발간한 누리과정 해설서에는 "놀이는 유아의 배움 그 자체"라는 표현이 명시되어 있을 정도입니다(출처: 교육부).
실제로 저희 아이 유치원에서 활동하는 방식을 보면 위에 설명드린 내용이 그대로 나타나는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매달 놀이 주제를 정할 때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정하여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회의를 합니다. 그 회의 결과에 따라 같은 유치원 안에서도 반마다 주제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아동중심교육(Child-centered Education)의 실천입니다. 아동중심교육이란 교사의 계획보다 아이의 관심과 주도성을 학습의 출발점으로 삼는 교육 방식을 말합니다.
두 접근법이 공유하는 핵심 가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를 능동적 학습자로 인식
- 놀이를 단순한 여가가 아닌 학습의 본질로 봄
-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관찰자이자 지원자
- 아이 간, 교사와 아이 간 상호작용을 통한 사고 확장

창의교육 현장에서 드러난 레지오 요소들
레지오 교육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 중 하나가 '100가지 언어(The Hundred Languages of Children)'입니다. 여기서 100가지 언어란 아이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 즉 그림, 춤, 노래, 블록, 점토, 이야기 등 모든 표현 수단을 가리킵니다. 정해진 방식이 아니라 아이 각자의 언어로 세계를 표현하도록 허용한다는 뜻입니다. (이 내용도 자세한 내용은 글 하단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저희 첫째와 둘째가 같은 나이 때 같은 선생님 밑에서 같은 '과학'이라는 주제로 한 달을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활동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첫째는 염색 실험을 통해 삼투압 현상을 탐구했고, 둘째는 고무동력 자동차를 만들며 탄성에너지에 대해 알아갔습니다. 같은 주제인데 회의 결과에 따라 활동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그냥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하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관심이 곧 교육과정이 되는 구조였습니다. 아이들 주도 하에 활동을 하여 아이들의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면서도 교육적 의미는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 저희 자랄 때와는 굉장히 다른 점이고, 바로 이러한 점이 '아동중심'교육이라는 점을 실감케 하였습니다.
환경 구성 측면에서도 레지오 교육의 영향이 보입니다. 레지오에서는 '제3의 교사'라는 개념을 씁니다. 여기서 제3의 교사란 교사, 부모에 이어 아이의 학습을 이끄는 세 번째 주체로서의 물리적 공간과 환경을 의미합니다. 최근 유치원에서 자연물 탐색 코너, 빛과 그림자 놀이 공간, 재활용 재료를 활용한 창작 공간이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기록화(Documentation)도 점점 현장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기록화란 아이의 놀이 과정, 대화, 결과물을 사진과 메모로 체계적으로 남겨 학습의 흔적을 가시화하는 방법입니다. 저희 유치원에서는 매달 놀이 기록 신문을 만들어 보내주셨는데, 신문을 보며 아이와 이야기 나누다 보면 우리 아이가 어느 장면에서 특히 눈이 빛났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뭘 했는지보다,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생각을 키워갔는지가 보여서 부모 입장에서 정말 의미 있었습니다. OECD의 유아교육 보고서도 이러한 과정 중심 기록 방식이 유아의 자기효능감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OECD).
현장 적용의 한계와 앞으로의 방향
누리과정에 레지오 철학이 반영되어 있지만, 확실히 현장에 적용하는 데에는 몇가지 한계와 장애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장애는 구조적 환경입니다. 레지오 교육은 장기 프로젝트 학습(Project-based Learning)을 기반으로 합니다. 장기 프로젝트 학습이란 하나의 주제를 몇 주, 심지어 몇 달에 걸쳐 깊이 탐구하는 방식으로, 즉각적인 결과보다 과정 자체를 중시합니다. 그런데 누리과정은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라는 특성상 일정한 목표 체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완전히 열린 탐구를 허용하기에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교사의 업무 환경도 현실적인 장벽으로 있습니다. 기록화를 제대로 하려면 관찰, 메모, 사진 정리, 동료 교사와의 협의가 필수입니다. 그런데 많은 선생님께서 행정 업무와 학급 운영을 병행하기 때문에 이를 충분히 수행하기는 어렵습니다. 학급 인원이 많을수록 아이 개개인의 관심을 깊이 반영하는 데에 한계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희 아이와 주변 유치원 현장에서는 창의적으로 두 접근법을 융합하려고 노력해 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누리과정의 틀 안에서 주제를 정하되, 그 안에서 어떻게 탐구할지는 아이들이 주도하는 방식입니다. '곤충 프로젝트'를 예로 들면, 아이들이 직접 곤충을 관찰하고 키우며 그림과 이야기로 표현하고, 가정에서도 이어서 탐구할 수 있도록 가정 연계 활동을 진행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는 레지오에서 강조하는 공동체 기반 교육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앞으로 중요한 건 레지오를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육 환경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입니다. 특히 교사 연수 확대, 공간 환경 개선, 기록화 문화 정착이 함께 이루어져야 현장에서의 변화가 실질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무리 정리
레지오 교육을 처음 접했을 때 "매우 좋다. 하지만 현실 적용이 가능할까?"라는 의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보내온 신문을 넘기다 보면,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탐구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 방향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 유치원에서 남겨 주시는 놀이 기록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시면, 생각보다 레지오의 흔직이 많이 담겨 있고, 활짝 웃으며 즐겁게 활동하고 있는 우리 아이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한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보시면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것읍니다. 보다 발전하는 우리나라 누리과정을 기대합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교육부, 「2019 개정 누리과정 해설서」
한국보육진흥원 유아교육 자료 (2024~2026)
Reggio Children 공식 홈페이지 https://www.reggiochildren.it
Loris Malaguzzi, The Hundred Languages of Children
OECD Early Childhood Education Report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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